PELOPONNESIAN WAR
펠로폰네소스 전쟁
기원전 431–404년
아테네의 바다 세력과 스파르타의 육지 동맹이 그리스 세계를 두 편으로 나눠 싸운 전쟁입니다. 중간에 휴전이 있었고,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 실패 뒤 전세가 기울어 아테네가 항복합니다.
- 왜
- 델로스 동맹이 아테네의 지배처럼 변한 것, 코르퀴라와 포티다이아를 둘러싼 충돌, 그리고 스파르타가 동맹시의 호소를 받은 일이 겹칩니다. 투키디데스는 가장 깊은 원인으로 아테네 세력의 성장을 꼽습니다.
- 누구
- 아테네와 해상 동맹 대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동맹. 페르시아는 전쟁 후반에 스파르타 함대에 돈을 댑니다.
- 결과
-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항복하고 성벽이 헐립니다. 스파르타의 패권은 오래가지 않습니다. 아테네 민주정은 잠시 무너졌다가 돌아옵니다.
- 전쟁 초 아테네는 성 안에 모여 버티고 함대로 치는 전략을 씁니다. 밀집된 도시에 역병이 돕니다.
- 기원전 421년 니키아스 휴전 뒤에도 분쟁이 남고, 415년 아테네는 시라쿠사를 치러 대규모 함대를 보냅니다.
- 시칠리아에서 함대와 육군을 잃은 뒤에도 전쟁은 이어집니다.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(405년)에서 아테네 함대가 무너집니다.
조금만 더펼치기접기
투키디데스가 이 전쟁의 기본 기록입니다. 그는 아테네 장군이었다가 추방되어 양쪽을 볼 수 있었다고 스스로 적습니다. 그의 책은 기원전 411년 무렵에서 끊깁니다. 그 뒤부터 404년까지는 크세노폰의 『헬레니카』가 이어 받습니다. 크세노폰은 스파르타 쪽에 기울어 있습니다.
시칠리아 원정을 민회에서 밀어붙인 사람 가운데 알키비아데스가 있습니다. 출항 뒤 그는 신성 모독 혐의로 소환되다 스파르타로 달아납니다. 현장에 남아 항복한 지휘관은 니키아스입니다. 재앙을 한 사람의 성격으로만 설명하면 민회의 결정과 보급이 빠집니다.
전쟁이 끝난 뒤 아테네에는 30인 과두정이 잠시 섭니다. 민주정이 회복된 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 재판이 열립니다. 철학의 죽음과 전쟁의 패배를 떨어뜨려 읽으면 당시 정치가 안 보입니다.
이 전쟁을 사건 그대로 다룬 유명한 극영화는 드뭅니다.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영화 목록에 모아 두었습니다.
근거로 삼은 기록
- 투키디데스 · 펠로폰네소스 전쟁사
- 크세노폰 · 『헬레니카』 1–2권
- 디오도로스 · 후대의 대조 자료
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.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.